자료 : 문화관광과

종목 명칭 수량 지정일 내용
보물제1713호 대승기신론소 3권1책 2011.04.29. 중국 당나라 법장이 마명(馬鳴)이 지었다는「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대해 주석한 교장의 일종으로 조선시대 1457년에 금속활자(초주갑인자)로 간인한 불서 3권 1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이 책이 유일한 원간본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약간의 상권의 일부가 결실되어 유감스러우나 국내유일의 원간본이라는 점에서 불교학 및 조선초기 고활자본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보물제1856호 대구서봉사
지장시왕도
1폭 2015.03.04. 대구 서봉사 지장시왕도는 18세기에 직지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화승 세관(世冠)이 1741년에 삼옥(三玉), 월륜(月輪), 서징(瑞澄), 순간(舜侃), 존혜(尊惠), 우평(宇平), 응잠(應岑) 등과 함께 조성한 지장시왕도이다. 가로로 금이 많이 가서 일부 화면이 손상되고 안료가 박락되긴 했지만, 화기가 완벽하게 남아있어 조성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화기에는 건륭6년(1741년) 5월에 유명회(幽冥會)를 조성하여 남장사 무량수전(南長寺 無量壽殿)에 봉안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원 봉안처가 남장사 무량수전임을 알 수 있으며, 당시 지장시왕도를 유명회(幽冥會)라고 불렀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남장사에는 같은 시기에, 같은 화승들이 조성한 아미타회상도와 삼장보살도가 남아있어 당시 이 지장시왕도도 함께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녹색과 적색이 주조를 이루는 색상과 섬세한 필선, 안정된 신체표현, 가늘게 곡선을 이루는 눈썹, 가늘고 작은 눈, 오목한 입 등 세관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자, 세관의 대표작인 직지사 삼세불도(1744년)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된 작품이다. 또한 당시 세관을 용면산인(龍眠山人)이라고 불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보물제774-3호 선종영가집(언해) 2권4책 2017.08.31. 『선종영가집』(언해본)은 세조(世祖)가 친히 구결(口訣)을 달고 신미(信眉) 등이 국역한 책으로 1464년(세조 10)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인출한 초인본으로, 상, 하권 4책이다. 권수면에「교정(校正)」인이 날인된 초인본으로, 하권의 마지막 4장의 결락이 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같은 책 중에서 최고의 선본(善本)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한글 창제의 초창기에 인출된 관계로 초기의 한글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그리고 불교학 연구와 서지학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국가문화재(보물)로 지정 보존할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제69호
천자문 1책 2013.10.30. 이 책은 조선 중기 서예가인 한호(韓濩/1543~1605)의 필적으로, 효종 1년(1650)에 목활자로 간행한 『천자문(千字文)』이다. 아동용의 한자 교육서적으로 글자마다 한글 소자의 발음, 의미와 성조가 부기되어 있다. 현재 전하는 대부분의『천자문』이 목판본인데 비해, 특대형 목활자로 인출된 희귀본이란 점에서 서지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제71호
대구
안일사
목조
석가여래좌상
1구 2015.05.11. 안일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목조석가여래좌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상호나 착의법 등에서 17세기 후반 목조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복장유물 중 석가모니불조성기(釋迦牟尼佛造成記)에 의하면 조각승 탁밀(卓密), 보웅(普雄) 등에 의하여 강희33년(1694)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조각승, 제작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시대 불상 조성의 흐름과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제72호
대구
은적사
목조
석가여래좌상
1구 2015.05.11. 은적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로, 양식적으로 보아 조선후기 조각승 하천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조각가와 제작시기를 알려줄 문자기록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작품의 완성도도 높으며, 18세기 초반 불상의 제작 방식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는 중요한 불상이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제76호
대구 서봉사 목조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29구 2016.03.10. 조각승 승일을 비롯한 9명의 조각승들이 1665년 3월에 시작하여 5월에 완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불상들은 원 봉안처 경상북도 상주 용흥사로부터 이안된 불상들로, 전체 29구가 완비되어 있다. 문자기록을 잘 구비하고 있고, 작품의 완성도도 뛰어나며, 17세기 후반 경상북도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의 작품으로 학술연구에도 매우 중요하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제81호
이수충가 소장전적 4종21점 2017.01.31. 『비아(埤雅)』는 297개 사물의 명칭에 대해 설명한 책으로 조선 전기에 간행된 금속활자본이다. 인출 및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전질로 잘 보존되어 있다.『이아주소(爾雅註疏)』는 중국의 유의어 사전인『이아(爾雅)』의 해설서로 조선 전기에 간행된 금속활자본이다. 인출 및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금속활자본으로는 유일한 책으로 희귀한 가치를 가진다. 이 두 자료는 퇴계선생의 장서인이 찍힌 수택본(手澤本)으로 후손의 가전(家傳) 경위가 묵서되어 있어 책의 소장자와 전래경위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퇴도선생일기(退陶先生日記)』는 임인년(1542), 계묘년(1543), 갑진년(1544) 3년 동안 퇴계 이황의 일기를 한 책으로 묶은 것으로, 후대에 후손이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퇴계 이황의 일상사를 기록한 생활일기 가운데 남아있는 유일본이고, 또 그 내용 중에는 퇴계의 암행어사 활동 내용이 서술되어 있는 등 기존의 퇴계 연보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전 학봉 시고(傳 鶴峰 詩稿)』는 작품의 희소성, 글씨체의 독특성, 작품의 수준 등 여러 면에서 가치가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제90호
감지금니대방광
불화엄경 주본
권22
1첩(10장) 2020.02.10.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는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가운데 권22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으로 세존이 도솔천궁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검푸른 색의 종이(紺紙)에 금색으로 정성스럽게 옮겨 쓴 것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앞부분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그려져 있고, 본문의 내용이 금색글씨로 정성껏 쓰여져 있다. 10개의 연화문으로 이루어진 표지화는 매우 드물고, 정확한 기록이 없어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종이의 질이나 그림과 글씨의 솜씨 등으로 미루어 14세기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표지화의 독특함, 금자만으로 이루어진 점, 14세기 고려시대 사경이라는 점 등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큰 자료이다.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제8호
판소리 흥보가
심청가
1992.09.08. (흥보가
보유자 故이명희) 2017.01.31. (심청가
보유자
주운숙)
흥보가 보유자 故이명희 명창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나 있는 향토출신 명창으로서, 1990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경연대회에서 영남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장원을 차지하였으며, 영남지방의 국악 부흥운동에 선봉으로서 활약하고 있었으나, 2019년 작고하여 현재는 전수조교 및 전수장학생들이 흥보가 보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심청가 보유자 주운숙 명창이 부르는 <심청가>는 이일주 선생에게 전수받은 동초제 판소리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1996년 제22회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장원을 하는 등 여러 차례의 명창대회와 완창발표회를 통해 그 예술적 기량을 검증받은 바 있다. 주운숙 명창의 동초제 판소리 심청가는 그 소리가 묵은 소리로 전통 판소리의 발성과 가락 진행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공연력 또한 매우 높은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대구광역시
기념물제7호
대덕산성 일원 1988.05.30. 이 산성은 대구지역(達句伐)을 방위하여 축조된 것으로써 험준하고 높은 산성세를 이용하여 능선을 따라 포곡형으로 석벽을 쌓은 것인데 우리나라 축조양식에 있어 초기 산성의 형태와는 달리 좀더 발달된 성의 형태이다. 대구읍지에 “壽城西十里 有古城今無(수성서십리 유고성금무)”라 한 것은 이 산성을 뜻한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제5호
법장사3층석탑 1기 1975.02.05. 법장사에 있는 3층 석탑으로 기단부는 파괴되어 원래의 모습을 알수 없고 3층을 이루는 탑신만이 차례대로 쌓여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탑이 있는 이곳은 원래 고산사가 자리잡고 있던 곳이라고 한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사찰은 모두 불에 타고 탑만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오다가 1961년 법장사를 새로이 지을 때 탑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등록문화재 대구대봉배수지 일곽(면적2,298㎡) 2006.06.19. 이 배수지는 대구 지역 최초의 수도 시설 가운데 하나로, 수도산 기슭에 대봉 1호 배수지를 건립한 후 급수 수요가 증가하자 2호 배수지를 추가로 건립하였다. 대봉 1호 배수지는 원통형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11개의 원형 창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으며, 창 주위에는 곡선형 테두리를 돌려 장식하였다. 붉은 벽돌과 정교하게 가공된 화강석을 사용해 화려하게 장식한 접합정을 비롯하여 염소 투입실, 돔 형태의 작은 건물 등 여러 시설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